본문으로 바로가기

안녕하세요.

시간을 달리는 무니입니다.

 

요즘 계절에 상관없이 그리고 휴일에 상관없이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행하면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 무엇일까요?

역시 튼튼한 여행가방입니다.

그럼 가방의 유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방'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캬반 : 挾板'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고 네덜란드어 '카바스 : kabas'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개 다 '물건을 넣어서 들고 다니는 것'이라는 뜻이죠.

영어의 '백 : bag'이라는 단어는 '자루'를 뜻하는 말로 스칸디나비아어 '배기 : baggi'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가방은 예상대로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되었습니다.

기원전 9세기경에 아시리아 고대 유적에 부조된 날개 달린 신상의 손에 네모난 가방이 들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고대에는 신분계층에따라 가방의 크기가 달랐다고 하네요.

 

옛날부터 귀족이나 왕족은 작은 가방에 보석이나 돈을 넣어서 다녔는데,  이 당시 가방은 아름다운 장식을 하여 귀족들의 품위를 나타내는 패션아이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초기에는 명문가 부인들이 '오모니엘'이라는 작은 주머니를 허리에 매달고 다녔는데, 실용적인 주머니가 아닌 패션을 위한 아이템이었습니다.

일반 서민들은 커다란 가방에 생활용품이나 식량 등을 넣어 다녔다고 합니다.

 

가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뀌어서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났고, 19세기 중엽에 유럽에서 현대적인 여행가방이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최초의 현대적인 여행가방을 만든 사람이 루이 비통이라고 합니다.

루이 비통은 목수의 아들이었는데 파리에서 가방을 꾸리는 짐꾼 수습으로 일하였는데, 나폴레옹 3세를 비롯한 귀족들의 짐을 잘 싸기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후 루이 비통은 1854년 파리의 중심가에 자신의 첫 매장을 오픈하였고, 기차의 화물칸에 실을 수 있는 커다랗고 튼튼한 트렁크를 개발하였습니다.

커다란 트렁크는 당시로서는 커다란 혁신으로, 물건을 수납하고 정리하기가 아주 편해서 귀족들이나 왕족들이 여행할 때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루이 비통의 가방은 고급 가방의 대명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명품 브랜드로서의 전략을 지키고 있습니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미국으로 건너간 유대인 제시 슈웨이더가 만든 샘소나이트가 여행 가방의 대명사로 떠올랐습니다.

슈웨이더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아버지를 도와 야채가게를 하다가, 로키 산맥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의 불평을 듣고 튼튼한 가방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슈웨이더는 연구 끝에 가방 모서리에 쇠로 된 징을 박아 가방이 바닥에 긁혀도 닳지 않도록 만들었고, 이 가방이 인기를 끌면서 '샘소나이트'라는 브랜드로 가방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샘소나이트'는 성경에 나오는 힘센 장사 삼손의 이름을 따와서 지은 이름입니다.

슈웨이더는 보증 기간을 1년으로 정하여 고객의 신뢰를 얻는 그 당시로는 참신한 보증기간 제도를 쓰기도 하였고, 가방 위에 널빤지를 얹고 그 위에 가족 전부가 올라가 앉는 사진 광고 등으로 튼튼한 가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샘소나이트는 이후 미국 전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여행가방의 No.1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한 편 여성들이 메는 핸드백은 20세기에 대중화 돠었는데, 핸드백은 실용성과 패션을 두개 다 만족시키는 점에서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유명한 영화배우나 왕족들이 핸드백의 유행에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직후의 전 영화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였던  아름다움의 대명사 '그레이스 켈리'가 <라이프>란 잡지의 표지모델로 나섰는데, 그 당시 임신을 하였던 그레이스 켈리는 임신한 배를 가리고자 은색 악어가죽 백을 들었고, 그 후로 그 가방은 '켈리백'으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 출처 : 비즈니스를 위한 역사상식  - 박영수 지음-

 

여행 가방과 핸드백의 유래 재미있으셨는지요?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얘기를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시간을 달리는 무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