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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시간을 달리는 무니입니다.

 

현대의 남성분들은 비즈니스 복장으로 슈트(양복)을 많이 입습니다

그리고 양복에는 일반적으로 넥타이를 많이 매게 되는데요.

 

서양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들의 격식있는 옷차림에 기본이 된 양복과 넥타이의 유래를 알고 계신가요?

 

이번에는 언제부터 착용하기 시작했는지 양복과 넥타이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에 민주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하는 19세기에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사람들은 자기의 노력으로 신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됩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가 번성하는 데 큰 도화선이 되어 노동자와 농민이 연합하여, 절대왕정과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시민 중심의 사회를 선언하게 됩니다.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이 복장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자켓과 판탈롱 바지를 입고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서 판타롱 바지가 지금의 양복 바지의 원조로 헐렁하고 긴 바지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귀족들은 처음에 일반시민들과 다르게 보이고자 '프랙'이라는 화려한 윗옷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기 시작하고 줄무늬 바지라던지 바둑판 무늬 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유럽에서 지금의 신사복 바지의 원조인 판탈롱 바지가 유럽에서 보편적인 바지가 됩니다.

 

그리고 윗옷 목 부분에 장식 띠를 매는 풍습도 유행하게 되는 데, 옷깃을 세우고 크라바트를 여러번 감는 방식이 유행하다가, 넓은 옷깃에 빳빳하게 풀을 먹인 후 크라바트를 좁고 긴 띠로 단순하게 변형을 하게 메었고 그게 점점 변형하여 오늘날의 넥타이의 유래(원조)가 되었습니다.

 

크라바트를 입었던 이유는 원래 멋으로 매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군의 용병들이 속옷을 가리고자 목에 감던 목도리였습니다. 용병들은 마귀가 몸에 들어오지 않도록 목도리를 칭칭감았는데 그것을 멋있게 본 프랑스 군들도 크라바트를 매기 시작하였고, 조금씩 변화하여 지금의 넥타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넥타이가 잘 보이도록 겉옷의 좌우 윗부분을 접어서 가슴 부분이 V자 모양으로 파이게 하였는데, 오늘날의 신사복의 옷깃 형식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870년대에는 신사복이 교양있는 남자의 필수적인 복장이 되었습니다.

 

복장이 바뀌자 머리 모양과 신발로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남자들은 머리카락이 목을 가리지 않도록 짧게 짜르기 시작하였고, 국가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구렛나룻을 기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자를 신사복과 함께 착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발도 일상생활에서 편리를 추구하도록 목이 짧은 구두를 신었습니다.

승마나 사냥을 할 때는 목이 긴 부츠를 신었고, 일상생활에서는 목이 짧은 구두를 신었습니다.

 

사람들은 편하고 활동적인 옷을 추구하기 시작하여, 옷에서 부터 신발까지 실용적으로 변했습니다.

잘 정리된 양복은 세련된 느낌과 함께 남자의 강한 힘을 느끼게 하였고, '신사복'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0년 4월부터 칙령에 의하여 양복을 관복으로써 입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이미 그 전부터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양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개화파 중에서도 서광범이 우리나라의 제1호 양복착용자(양복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와 같이 양복과 넥타이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만, 양복은 민주화와 근대화의 또 하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 시간을 달리는 무니였습니다.